[한경에세이] 포스트 팬데믹 증후군

입력 2022-02-20 17:45   수정 2022-02-21 00:20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병이 길어지면 민심이 흉흉해지고 사회적 불안과 소요는 물론 정치체제마저 위험에 처하는 ‘포스트 팬데믹 증후군’이 발생한다. 실제로 14세기 페스트가 봉건제도를 붕괴시킨 사례에서부터 1918년 스페인 독감에 이르기까지 역병의 후유증이 세상을 뒤흔든 혼란의 역사는 세계 곳곳에 널려 있다.

장발장으로 널리 알려진 ‘레미제라블’의 배경이 됐던 1832년 6월의 파리 봉기도 대표적 사례다. 그해 파리에는 콜레라가 크게 유행해 불과 몇 달 만에 65만 시민 중 2만 명이 사망하는 대참사가 빚어졌다. 당시 원인을 알 수 없는 역병이 파리 빈민가를 중심으로 크게 확산하자 저소득층은 상류층이 독을 퍼뜨린 것이라고 분개했고, 상류층은 빈민가의 불결한 생활양식을 힐난하며 계층 간 갈등과 반목이 극심해졌다. 이것은 곧 왕정에 반대하며 군주제 폐지를 기치로 한 시민항쟁으로 이어졌고, 거듭된 봉기와 억압의 악순환을 거쳐 결국은 1848년 프랑스 혁명으로 폭발했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이 130개국에 대한 방대한 자료를 분석한 연구에서도 전염병이 진정된 2~3년 사이에 ‘포스트 팬데믹 증후군’이 발생한다는 가설이 입증됐다. 인구 10만 명당 전염병 감염률과 사회적 소요 건수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역병 발생 빈도가 높고 피해가 심각한 국가일수록 사회 불안과 소요, 정권교체, 나아가 체제 변동이 뒤따랐다. 특히 역병이 맹위를 떨칠 때는 사회적 일체감이 고조돼 안정된 체제를 유지했던 나라에서도 질병의 공포가 사라진 뒤에는 포스트 팬데믹의 후유증으로 심각한 혼란을 겪었다.

이런 현상은 어디서부터 비롯되는 것일까. 무엇보다 취약계층에서 희생자가 많고 경제적 피해도 더 심각하지만, 피해 보상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사회 안전망과 정치 제도에 대한 불신을 증대시키고 계층 간 갈등과 사회적 소요를 촉발하게 된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도 세계 각국의 소득불균형이 더욱 악화했을 뿐만 아니라 산업 간, 기업 간 격차도 크게 확대됐다. 경제적 후유증은 물론 방역 규제와 집값 폭등, 인플레이션 확산으로 서민들의 불만도 한계를 넘었다. 미국도 40년 만에 가장 높은 7.5%의 인플레이션을 기록하고 있다. 나아가 일자리마저 사라지고 있으니, 서민들의 불만이 쉽게 가라앉을 수 있겠는가.

한국의 상황은 어떠한가. 과거의 역사가 미래를 예측하는 지표가 된다면 코로나가 진정된다고 해도 상당히 심각한 사회적 혼란을 겪게 될 것 같다. 설상가상으로 대선까지 겹쳐 쏟아지는 현금 복지와 감세 공약의 후유증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또한 인플레이션과 재정 파탄의 우려 속에 금리가 올라가고 있어, 민간의 과다한 부채 역시 또 하나의 뇌관으로 부상할 것이다. 코로나가 종식된 이후에도 그 상흔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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